형법에서 범죄 성립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가 “행위”다. 그러나 일상어로서의 행위와 법학에서의 행위는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일상에서는 누군가가 움직였거나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행위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형법은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형사처벌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형법이 말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단순한 생각이나 성향, 우연한 상태, 결과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해져 법치주의가 흔들릴 수 있다. 행위론은 바로 이 출발점을 정리하는 분야로서, 범죄론 전체의 첫 단추 역할을 한다.
1) 형법상 행위의 의미: 사람의 의사에 기초한 통제 가능한 움직임
형법에서 행위는 단순한 신체 움직임이 아니라, 사람의 의사에 기초해 통제 가능한 신체 활동을 중심으로 이해된다. 핵심은 “통제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타난 반사적 움직임, 강한 외력에 의해 몸이 밀려 발생한 접촉, 수면 중 무의식적 동작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움직임은 원칙적으로 ‘행위’로 평가하기 어렵다. 형법이 행위를 이렇게 좁게 잡는 이유는 명확하다. 처벌은 비난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데, 통제할 수 없는 움직임에 대해 “왜 그렇게 했냐”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위론은 형사책임이 “사람에게 귀속될 수 있는 사건”에서만 출발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다. 즉, 형법은 자연현상이나 단순 사고를 처벌하지 않으며, 반드시 사람의 행위가 매개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결과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그 결과를 낳은 과정이 행위자의 통제 영역 밖이라면 형사책임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2) 작위와 부작위: 한 ‘행동’만 처벌하는가, ‘하지 않음’도 처벌하는가
행위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구분은 작위와 부작위다.
작위는 무엇인가를 “하는” 형태의 행위다. 폭행, 절도, 손괴처럼 적극적 행동으로 범죄가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부작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형태다.
중요한 점은 부작위가 곧바로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법은 일반적으로 “하지 않음”을 광범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 않은 모든 것을 처벌할 수 있다면 처벌 범위가 끝없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작위가 형사책임으로 이어지려면, 대체로 작위 의무, 즉 그 사람이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강하다. 예를 들어 특정 직무상 의무, 계약이나 법률상 보호의무, 선행행위로 위험을 만들어 그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 의무 등 다양한 근거로 작위 의무가 논의될 수 있다. 결국 부작위 범죄는 “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로 구조가 바뀐다.
3) 인과와 귀속: 결과가 발생하면 모두 행위 때문인가
많은 범죄는 결과를 전제로 한다. 상해의 결과, 재산상 손해, 생명 침해 같은 결과가 대표적이다. 이때 행위론은 “어떤 사건이 결과를 낳았는가”라는 사실관계뿐 아니라, 그 결과를 행위자에게 법적으로 귀속할 수 있는가를 함께 묻는다.
예컨대 어떤 행동이 결과 발생에 일정한 원인이 되었더라도, 그 사이에 제3자의 독립된 개입이 끼어들거나, 예외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면 결과를 곧바로 행위자에게 귀속시키기 어렵다는 논의가 가능하다. 즉 “사실상 원인”과 “법적 책임”은 동일하지 않다. 행위론은 이 간극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결과와 관련하여 중요한 기준은 예견 가능성과 위험의 창출이다. 행위가 사회적으로 허용된 위험 범위를 넘어서 새로운 위험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위험이 현실화된 결과인지가 문제 된다. 이 관점은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났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든 위험이 무엇이냐”로 분석의 초점을 옮겨,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4) 행위의 단위: 한 사건에서 행위가 몇 개인지 왜 중요할까
행위론은 행위가 무엇인지뿐 아니라, 한 사건에서 행위를 “어디까지 하나로 보고 어디서부터 나눌지”도 다룬다. 이것은 이후 죄수론과도 연결되지만, 그 출발점은 행위의 단위 설정이다. 예컨대 일정 기간 반복된 행위가 하나의 흐름인지, 중간에 단절이 있는지, 동일한 목적 아래 이어진 일련의 행동인지에 따라 행위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달라진다. 행위 단위가 달라지면 범죄 성립 자체뿐 아니라, 적용되는 조문과 처벌의 틀, 공소시효와 같은 절차 문제에도 영향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행위론은 사실관계를 시간적으로 배열하는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5) 행위론의 실무적 의미: “사람의 책임”을 결과와 감정에서 분리한다
행위론이 실제로 중요한 이유는, 책임의 출발점을 “결과”가 아니라 “행위”에 두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과가 중대할수록 사회적 비난은 커지지만, 형법은 그 비난만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형법은 반드시 통제 가능한 행위가 있었는지, 그 행위가 법이 금지한 위험을 만들었는지, 결과가 그 위험의 현실화인지, 그리고 그 결과를 행위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정당한지라는 질문을 단계적으로 던진다. 이 과정이 없으면 형법은 결과책임으로 기울 수 있고, 결국 “나쁜 결과가 났으니 누군가는 처벌해야 한다”는 감정적 압력에 취약해진다.
6) 정리: 행위론은 형사책임의 ‘입구’를 설계한다
정리하면, 행위론은 형법에서 행위가 무엇인지, 작위와 부작위를 어떻게 구분할지, 결과를 어디까지 행위자에게 귀속시킬지, 행위의 단위를 어떻게 설정할지 등을 통해 형사책임의 출발점을 정리한다. 형법은 생각이나 성향을 처벌하지 않고, 통제 가능한 행위를 전제로 책임을 논한다. 또한 하지 않음의 처벌은 법적 의무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려고 하며,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그 결과가 행위자가 만든 위험의 현실화인지 신중히 따져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한다. 결국 행위론은 형법이 감정이 아니라 규범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첫 관문이며, 범죄론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초 토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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