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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죄형법정주의, 죄와 벌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

by jeonginlog 2026. 1. 3.

죄형법정주의: 국가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묶어 두는 원칙

죄형법정주의는 “법에 미리 정해진 경우가 아니면 범죄로 보거나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형사처벌은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재산을 박탈하며 사회적 평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처벌이 가능하려면, 국가가 임의로 기준을 만들거나 사건이 발생한 뒤에 규칙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이 사전에 알 수 있도록 법으로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죄형법정주의는 이처럼 형벌권의 출발점에서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에게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 기본 원리로 기능한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나쁜 일”이라는 평가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면, 무엇이 범죄인지가 시대 분위기나 권력자의 판단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그러면 법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통치 수단으로 변질된다. 죄형법정주의는 “나쁘다”는 도덕적 비난과 “처벌한다”는 국가 작용을 구분하고, 처벌은 언제나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결국 죄형법정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원칙이면서 동시에, 처벌이 이루어질 때에도 그 처벌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절차적 기반이다.

1) 죄형법정주의의 핵심 요소: 미리 정해진 법과 분명한 기준

죄형법정주의는 크게 두 가지 요구를 담고 있다. 첫째, 범죄와 형벌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이는 행정부나 수사기관이 내부 지침이나 관행으로 처벌 기준을 만드는 것을 막는다. 둘째, 그 법률은 국민이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해야 한다. 법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범위가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다. 그러면 실제로는 권력기관이 재량으로 처벌 범위를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죄형법정주의는 단지 “법이 있어야 한다”는 수준을 넘어, “법이 명확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포함한다.

또한 죄형법정주의는 사건이 발생한 뒤에 더 무겁게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소급해 적용하는 방식도 경계한다. 국민은 자신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법은 규범이 아니라 함정이 된다. 따라서 처벌은 원칙적으로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하며, 사후적으로 불리한 기준을 들이대는 방식은 형사법의 정당성과 맞지 않는다.

2) 유추해석 금지: “비슷하니까 처벌”을 막는 장치

죄형법정주의와 함께 자주 논의되는 것이 유추해석 금지다. 유추해석이란 법에 적혀 있는 문언의 범위를 넘어, 비슷한 사례라는 이유로 처벌 대상을 넓히는 방식이다. 형벌 규정에서 이런 확장 해석이 허용되면, 어디까지가 처벌 대상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결국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에 따라 처벌 범위가 늘어나 국민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형벌 법규는 기본적으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하고, 처벌 규정을 넓히는 방향의 해석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태도가 확립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해석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은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해석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해석이 “법에 적힌 의미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범위를 넘어 확장”되는지다. 죄형법정주의는 이 경계를 넘는 순간, 형벌권이 법률이 아니라 해석자의 의지에 의해 확대된다고 보고 강하게 제한한다.

3) 명확성의 요구: 애매한 법은 위험하다

죄형법정주의는 명확한 법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사회질서를 해치는 행위”처럼 너무 포괄적인 표현만으로 처벌을 구성한다면, 무엇이 사회질서를 해치는지 해석이 끝없이 넓어질 수 있다. 그러면 국민은 어떤 행동이 처벌되는지 미리 알기 어렵고, 수사기관은 넓은 재량을 갖게 된다. 그래서 형벌 규정은 구성요건, 행위태양, 결과, 고의나 과실 등 핵심 요소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명확성은 단순한 문장 다듬기 문제가 아니라, 권력 남용을 막는 실질적 장치다.

명확성의 요구는 또한 수사와 재판의 단계에서 증명의 범위를 선명하게 만든다. 법이 분명할수록 어떤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지,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 처벌이 가능한지가 명확해진다. 반대로 법이 애매하면 증명 대상 자체가 흔들리고, 그 결과 유죄 판단이 과도하게 쉬워지거나 어려워져 형사사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4) 형벌법규의 엄격해석과 인권 보장: 절차의 문제를 넘어 내용의 문제

죄형법정주의는 적법절차처럼 “절차를 지켜라”는 요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정할 것인지, 어느 정도로 처벌할 것인지라는 “내용” 자체도 법률로 결정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이 선출한 입법기관을 통해 형사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형벌권이 행정권력의 필요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민주적 통제의 의미도 가진다.

또한 죄형법정주의는 무죄추정과도 연결된다. 처벌은 법률이 정한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가능하고, 그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은 엄격한 증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때 법률 자체가 명확하고 제한적일수록, 무죄추정 원칙은 더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법률이 포괄적이고 해석이 확장될수록, 무죄추정은 형식적 문구로 전락할 위험이 커진다.

5) 결론: 죄형법정주의는 처벌을 제한하지만, 정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범위를 좁힌다. 그래서 때로는 “왜 저런 행위가 처벌되지 않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만을 이유로 처벌을 확대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누구든지 애매한 기준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당장의 분노보다 장기적 안전을 택한 원칙이며,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다.

또한 이 원칙은 범죄 피해자 보호와도 양립할 수 있다. 처벌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법률로 정비하면 된다. 다만 그 과정은 사후적 처벌이나 확장 해석이 아니라, 공개적 입법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죄형법정주의는 “처벌하지 말자”가 아니라, “처벌하더라도 법에 따라 정당하게 하자”는 원칙이다. 형사사법이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법치의 제도로 남기 위해, 죄형법정주의는 지금도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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