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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재량의 빈틈을 메우는 권리: 무하자재량청구권을 제대로 이해하기

by jeonginlog 2026. 1. 3.

행정청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재량이 있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말이 곧 “결과가 바뀔 수도, 안 바뀔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같은 요건을 갖추고도 어떤 사람은 허가를 받고, 어떤 사람은 거부당한다. 같은 위반인데 어떤 사람은 가벼운 처분을 받고, 어떤 사람은 생계를 흔들 정도의 처분을 받는다. 이때 국민이 느끼는 문제는 단순히 불만이 아니라 “판단이 제대로 이뤄진 게 맞나”라는 의문이다.

무하자재량청구권은 바로 그 의문을 법적 언어로 정리한 개념이다. 핵심은 거창하지 않다. 행정청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더라도, 국민은 행정청에게 하자 없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재량을 행사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하는 결과를 달라”가 아니라 “틀린 방식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요구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량이라는 공간을 인정하되, 그 공간이 자의로 채워지지 않도록 통제의 기준을 세우는 장치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1) 재량이 있는 곳에서 갈등이 커지는 이유

재량은 흔히 법이 모든 경우를 한 줄로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긴다.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는 안전, 주변 영향, 공익, 신청인의 준비 정도 등 다양한 요소가 얽힌다. 제재 처분을 할 때도 위반의 정도, 반복 여부, 개선 노력, 피해 규모 등 고려할 요소가 많다. 그래서 법은 일정 범위 안에서 행정청이 판단할 수 있게 여지를 둔다.

문제는 그 여지가 넓을수록 “판단 과정”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결과만 남고 이유는 짧게 적히거나, 이유가 있어도 핵심이 빠져 있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국민은 결과 자체보다도 “내 사건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봤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무하자재량청구권은 바로 그 요구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재량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절차와 기준이 흐려지는 순간, 행정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2) ‘하자’는 무엇인가: 재량에도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이 있다

재량은 선택의 여지이지, 실수할 자유가 아니다. 재량 판단에서 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법의 목적과 상관없는 이유를 끼워 넣는 경우다. 예컨대 법이 보호하려는 공익과 무관한 사정, 개인적 호불호, 단순한 행정 편의가 판단의 중심이 되면 재량은 목적을 잃는다.

둘째, 반드시 봐야 할 요소를 빠뜨리는 경우다. 판단에 필요한 사정을 검토하지 않은 채 결론부터 정해 놓으면, 결과가 우연히 맞더라도 과정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재량은 특히 “무엇을 고려했는지”가 중요하므로 누락이 치명적이다.

셋째, 사실관계를 잘못 잡는 경우다. 처분의 기초가 되는 사실이 틀리면, 그 위에 쌓은 판단도 흔들린다. 자료를 오해했거나, 핵심 정황을 반대로 이해했거나, 확인 가능한 부분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하자 논의가 생긴다.

넷째, 불이익이 과도해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다. 공익을 내세우더라도 개인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 지나치면, 그 재량은 설득력을 잃는다. 특히 제재 영역에서는 위반의 정도와 처분의 강도가 맞는지, 더 완화된 수단이 가능한지 같은 점이 중요하게 떠오른다.

다섯째, 비슷한 사안을 이유 없이 다르게 다루는 경우다. 누구에게는 관대하고 누구에게는 가혹한 처분이 반복되면, 국민은 규범을 믿기 어렵다. 재량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유지돼야 한다.

이런 요소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재량이란 이름 아래에서도 이유와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은 법 목적에 맞아야 하며, 과정은 검토 가능한 방식으로 남아야 한다는 요구다.

3) 이 권리가 보장하는 것: 결과를 “확정”해 주는가, 판단을 “정상화”해 주는가

여기서 가장 흔한 오해가 생긴다. “그럼 이 권리 있으면 무조건 허가받을 수 있나?”
대부분의 경우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무하자재량청구권이 중심으로 삼는 것은 보통 특정한 결과를 바로 요구하는 힘이 아니라, 정상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힘이다. 즉 국민이 행정청에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 가깝다.

판단에 필요한 요소를 빠짐없이 검토해 달라

법 목적에 맞는 기준을 써 달라

비슷한 사안과 비교해도 납득 가능한 수준의 처분을 해 달라

과도한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 달라

이렇게 보면 이 권리는 “이겨서 결과를 바꾸는 무기”라기보다, “판단 과정을 바로잡는 안전장치”에 가깝다. 하지만 그 안전장치가 작동하면 결과에도 영향을 준다. 과정이 정리되면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실제로 많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청이 핵심 사정을 누락했거나, 목적과 무관한 이유를 앞세웠다면, 다시 판단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바뀔 가능성도 생긴다.

4) 재량이 ‘사실상 하나’로 좁혀지는 순간

재량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선택지가 넓은 것은 아니다. 어떤 사안은 법의 목적과 사실관계를 차근차근 놓고 보면, 합리적으로 가능한 결론이 거의 하나로 수렴한다. 예를 들어 요건이 충분히 충족되었고, 공익상 위험이 낮고, 다른 사례와 비교해도 거부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거부도 가능하다”는 말은 형식적으로만 남게 된다. 이런 상태를 흔히 재량이 사실상 줄어든 상황으로 이해한다.

이때 무하자재량청구권은 의미가 더 커진다. 국민은 단지 “제대로 봐 달라”를 넘어, “이 사정이라면 정상적인 판단은 이런 방향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사건이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행정청이 재량을 내세워 결론을 고정하려 할 때, 사실관계와 법 목적이 결론을 좁혀 가는 방향으로 쌓이면, 재량은 더 이상 넓은 자유가 아니라 정당한 결론을 향한 책임으로 바뀐다. 이 전환을 설명해 주는 것이 이 개념의 강점이다.

5)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면

무하자재량청구권은 “재량을 없애라”가 아니라 “재량을 제대로 써라”라는 요구다. 국민에게는 자의적 처분을 견제할 언어를 주고, 행정청에게는 판단의 근거와 과정을 정교하게 만들 책임을 부여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먼저 정돈될 때, 재량은 특권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행정으로 바뀐다. 결국 재량의 품질이 올라갈수록 행정은 덜 분쟁적이고 더 예측 가능해지며, 그 출발점에 바로 이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