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에서 범죄가 성립한다고 말하려면 보통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사실관계가 법이 정한 범죄의 틀에 들어맞는지(구성요건 해당성)를 본다. 둘째, 그 행위가 법질서 전체 관점에서 허용될 수 없는지(위법성)를 본다. 셋째, 그 사람을 비난하며 처벌할 수 있는지(책임)를 본다. 이 가운데 위법성론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판단 이후에 그럼에도 처벌할 수 없는 사유가 있는지를 가려내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위법성론은 범죄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오해를 하나 교정한다. 즉,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에서 이 단계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폭행이나 손괴처럼 보이는 행위가 실제로는 방어를 위한 행동이거나 더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밀쳤다면 외형상 폭행처럼 보일 수 있고, 화재를 막기 위해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면 손괴처럼 보일 수 있다. 위법성론은 이런 상황에서 “형식상 구성요건에는 맞지만, 법질서가 그 행위를 허용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1) 위법성의 의미: 법질서에 반하는가, 허용되는가
위법성은 단순히 “나쁜 일”이라는 도덕 판단이 아니다. 법학에서 위법성이란 행위가 법질서에 반한다는 규범적 평가다. 중요한 점은 법질서가 항상 “하지 마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막아도 된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를 할 수 있다”처럼 허용의 메시지도 함께 담고 있다. 위법성론은 이 허용의 구조를 체계화한다.
그래서 위법성 판단은 두 갈래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위법성이 추정되는 방향으로 출발하지만, 정당화 사유가 인정되면 그 추정은 뒤집힌다. 즉 구성요건이 “금지의 틀”이라면, 정당화 사유는 “허용의 문”이다.
2) 정당화 사유의 대표 유형: 허용되는 이유가 있는 경우
위법성을 조각하는 대표 사유로는 보통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피해자의 승낙, 정당행위가 논의된다. 각각의 핵심을 위법성론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당방위: 부당한 공격에 대한 방어
정당방위는 현재 진행 중인 부당한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 행위를 허용한다는 논리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공격이 현실적으로 임박했거나 진행 중인지, 방어가 그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인지, 방어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지 같은 요소다. 위법성론은 이 요소들을 통해 “방어는 허용되지만, 복수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경계를 만든다.
긴급피난: 더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긴급피난은 현재의 급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그 침해를 허용하는 논리다. 핵심은 보호하려는 이익이 침해되는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는지, 위험이 현실적이고 급박했는지, 다른 수단이 없었는지다. 결국 긴급피난은 이익 비교와 불가피성이 중심에 있다.
자구행위: 국가 도움을 기다릴 수 없는 예외적 상황
자구행위는 권리 침해를 당했는데도 국가의 도움을 즉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권리 실현을 위해 임시로 조치하는 것을 일정 범위에서 허용하는 논리다. 다만 이는 사적 제재가 무제한으로 허용된다는 뜻이 아니므로, 요건이 매우 엄격하게 다뤄지는 편이다.
피해자의 승낙: 피해자가 동의한 침해는 허용되는가
피해자의 승낙은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법익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동의가 위법성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모든 법익이 승낙으로 처분되는 것은 아니고, 승낙의 진정성, 범위,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지 같은 조건이 중요하다. 특히 신체나 생명처럼 중요한 법익은 승낙이 있다고 해서 항상 허용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 논의가 존재한다.
정당행위: 법령이나 사회규범이 허용하는 행위
정당행위는 법령에 근거한 행위, 직무 수행 과정에서 허용되는 행위, 사회상규에 비추어 정당한 행위처럼 법질서가 허용하는 활동을 위법성에서 제외하는 논리다. 위법성론은 이 범주를 통해 합법적 권한 행사와 범죄를 구분한다.
3) 위법성 판단의 공통 기준: 필요성, 상당성, 최소침해
정당화 사유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판단 틀이 있다. “정말 필요한가”, “정도의 균형이 맞는가”, “더 덜 침해적인 방법이 없었는가” 같은 질문이다. 이를 정리하면 필요성, 상당성, 최소침해로 요약할 수 있다. 위법성론은 이 기준을 통해 정당화 사유가 남용되는 것을 막는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방어가 공격을 막는 데 필요해야 하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정당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 긴급피난도 마찬가지로 더 부드러운 방법이 있었다면 불가피성이 약해진다.
4) 오해하기 쉬운 지점: 위법성은 “무조건 면책”이 아니다
위법성 조각이 인정되면 그 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사건에서 정당화 사유가 주장된다고 해서 늘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요건 판단은 매우 구체적이며, 같은 유형이라도 상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위법성 단계에서 해결되지 않더라도, 책임 단계에서 고의나 인식, 기대 가능성 등이 문제 되어 책임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위법성론은 “면책 논리”가 아니라, 처벌 정당화의 경계를 그리는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5) 정리: 위법성론은 법이 허용하는 ‘예외’를 통해 정의를 만든다
위법성론은 구성요건 해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의를 구현하는 장치다. 법은 원칙적으로 특정 행위를 금지하지만, 부당한 공격을 막거나 급박한 위험을 피하는 등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 침해를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법익을 보호한다. 위법성론은 그 허용의 요건과 한계를 체계화해, 정당방위는 살리고 복수는 막으며, 불가피한 피난은 허용하되 편의적 침해는 차단한다. 결국 위법성론은 형법이 단순한 처벌 규칙이 아니라, 충돌하는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규범 체계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단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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