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은 원칙적으로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러나 사회는 단지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행위를 동일하게 비난하지 않는다. 경찰의 체포, 의사의 수술, 부모의 훈육,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행사처럼 외형상 타인의 신체·자유·재산을 제한하는 모습이더라도, 사회 공동체가 이를 불가피하거나 정당하다고 평가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정당행위는 바로 그 지점을 형법의 언어로 정리한 개념이다. 즉,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다.
정당행위는 흔히 정당방위, 긴급피난과 함께 ‘위법성 조각사유’로 분류된다. 다만 정당방위가 부당한 공격에 대한 방어라는 대립 구조를 전제로 하고, 긴급피난이 현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성을 중심으로 한다면, 정당행위는 보다 폭넓게 “사회가 허용하는 행위의 범주”를 포괄한다. 그래서 정당행위는 그 자체로 유연하지만, 동시에 남용될 위험도 크다. 법은 이 유연함을 통제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결국 그 기준은 필요성과 상당성, 그리고 사회통념에 의해 구체화된다.
1) 정당행위의 출발점: ‘법령에 의한 행위’와 ‘업무로 인한 행위’
정당행위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은 “법이 허용하는 공적 행위”다. 예컨대 적법한 영장 집행, 범죄현장 통제, 강제처분처럼 국가작용은 개인의 자유나 재산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법령이 정한 절차와 요건에 따라 이루어질 때 위법이 아니다. 이때 정당성의 근거는 단순히 권한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권한 행사에 요구되는 절차적 통제(영장, 고지, 비례성 등)까지 포함한다. 즉 “법령이 허용한다”는 말은 무제한 허용이 아니라, 법령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정당화된다는 뜻이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은 업무로 인한 행위다. 의료행위, 스포츠 경기, 교육활동, 산업안전조치처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업무에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과 침해가 수반된다. 예컨대 수술은 신체를 절개하지만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 사회가 허용한다. 격투 스포츠는 신체에 충격을 가하지만 규칙과 안전장치 아래에서 사회가 용인한다. 여기서도 핵심은 “업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업무가 사회적으로 승인된 영역인지, 그리고 행위가 그 업무의 목적과 방법에 비추어 필요하고 상당한지다.
2) 핵심 기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인가
정당행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회통념이다. 사회통념이라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쉽게 말하면 “그 상황에서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다만 형법은 도덕 평가가 아니라 법적 평가를 하기 때문에, 사회통념은 막연한 여론이 아니라 법질서 전체의 가치 판단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결국 정당행위의 판단은 법령, 제도, 관행, 전문규범(의료·체육·교육 등), 그리고 피해 최소화의 노력까지 종합하여 이루어진다.
이때 반드시 등장하는 개념이 상당성이다. 어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방법이 과도하면 정당행위로 보기 어렵다. 예컨대 권리행사를 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업무 수행이라는 이유로 안전수칙을 무시해 타인의 법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면, 사회통념상 허용 범위를 벗어난다. 그래서 정당행위는 “목적이 좋으니 괜찮다”가 아니라, 목적과 수단의 균형이 유지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3) 피해 최소화와 비례의 관점: 필요성은 있었는가
정당행위는 위법성을 조각하는 만큼, 그 정당화에는 설득력이 필요하다. 그 설득력은 대체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는가”에서 나온다.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덜 침해적인 수단이 존재한다면, 굳이 더 강한 수단을 택한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예컨대 업무상 조치로 타인의 재산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하고, 사후적으로 설명·고지·기록을 남기며, 불필요한 손상을 피하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런 요소들은 나중에 정당성 평가에서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승인된 범위 안에서 운영되었는지”를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당행위가 결과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그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했고 합리적인 범위였다면 정당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반대로 결과가 경미하더라도 행위 방식이 부당하거나 과잉이면 정당성이 부정될 수 있다. 정당행위 판단은 결국 행위 당시의 객관적 사정과 선택 가능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4) 권리행사와 정당행위: ‘권리’가 곧 ‘면책’은 아니다
정당행위에서 특히 오해가 많은 영역이 권리행사다. 사람들은 종종 “내 권리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지만, 법은 권리행사에도 한계를 둔다. 권리행사는 원칙적으로 정당행위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으나, 그 방식이 법질서가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면 위법해진다. 예컨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변제를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폭행·협박을 동반하거나 자력구제처럼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리를 실현하려 하면 정당성을 잃는다.
따라서 권리행사는 정당행위의 대표 사례이면서도 동시에 통제의 필요성이 큰 영역이다. 핵심은 권리의 존재가 아니라 “권리 실현의 방법”이다.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폭력이나 위협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정당행위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정당행위는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이면서도, 권리 행사의 사회적 질서를 지키려는 제도이기도 하다.
5) 정당행위와 다른 위법성 조각사유의 관계
정당행위는 위법성 조각사유 중에서도 포괄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사유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두면 이해가 빨라진다. 정당방위는 공격에 대한 방어라는 구조가 분명하지만, 정당행위는 공격·방어 구조가 없어도 성립할 수 있다. 긴급피난은 위험 회피와 이익 비교가 핵심인데, 정당행위는 위험이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업무·권리행사 등에서 문제 된다. 즉, 정당행위는 “사회가 허용하는 행동 양식”을 폭넓게 담아내는 그릇이고, 정당방위·긴급피난은 그중에서도 요건이 비교적 구체화된 특별한 유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포괄성이 큰 만큼 정당행위를 ‘만능’처럼 쓰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 판단에서는 구체적 요건이 명확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틀에 먼저 대입해보고, 그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 정당행위의 관점에서 사회적 상당성을 검토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결국 정당행위는 법질서가 허용하는 범위를 확인하는 마지막 관문처럼 기능한다.
6) 정리: 정당행위는 ‘허용된 목적’과 ‘허용된 방식’이 만나는 지점이다
정당행위는 법이 현실의 필요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사회에는 공적 권한 행사, 전문 직역의 업무, 교육과 의료, 스포츠와 안전조치 등 필연적으로 타인의 법익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존재한다. 법은 이를 일괄적으로 범죄로 취급하지 않고,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허용한다. 그 조건의 핵심은 결국 두 가지다. 첫째, 행위의 목적과 맥락이 사회적으로 승인된 영역에 속하는가. 둘째, 그 목적을 실현하는 방식이 필요하고 상당하며,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가.
정당행위는 ‘위법성 조각’이라는 강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판단은 반드시 구체적 사정을 전제로 한다. 같은 의료행위라도 동의 절차, 위험 설명, 통상적 기준 준수 여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고, 같은 권리행사라도 방법이 폭력적이면 정당성을 잃는다. 결국 정당행위는 “법이 허용한 행위”라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법질서가 승인하는 목적과 비례·필요의 방법이 결합된 경우에만 성립하는 구조라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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